도시재생

마을호텔 고한읍 18번가와 도시재생에 대한 단상

urbanlr 2022. 4. 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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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호텔'은 효과적인 도시재생 모델의 하나로 설명되어지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호텔을 마을 전체로 흩뿌려놓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을 전체가 호텔이 되는 것이다. 마을호텔18번가에서 숙박을 하고 지역 맛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미술관, 카페, 방탈출게임, 세탁소 등의 퍼실리티를 마을 안에서 해결한다.

 

마을호텔이 주목받는 이유는 도시재생의 효과가 조금이라도 더 지역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을호텔 18번가에는 14개의 회원사가 있는데, 숙박영수증을 가지고 가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하이원 리조트 시설도 40%나 할인받을 수 있다. 스키장 그 하이원이 맞다.) 그리고 숙박기간동안 지역주민에게 야생화 빛공예 수업도 받을 수 있다. 마을호텔에 대한 호응도 꽤 괜찮아서 2호점, 3호점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2호점은 새로 짓는게 아니라 지역에 본래 자리하고 있던 민박집을 리모델링하여 마을호텔의 일부로 흡수시키는 방법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마을호텔 시스템을 함께하는 조건으로 수수료 15%를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생이라는게 결국 지역 주민들이 살만하고, 할만한 일이 있고, 만족스러운 지역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낙후된 지역을 깔끔하게 개선시키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끌어들인 사람들이 마을의 각종 상점들을 이용하고, 이 과정을 제공하는 일이 지역 주민이 도맡고. 마을도 개선하고 일자리도 발굴하고, 사람들도 끌어들이고. 꽤 괜찮은 도시재생 모델이다. (실제 몇몇 젊은 청년들이 마을호텔18번가의 매력에 빠져 이주해 왔다고 한다.)

반나절정도 마을을 접하면서 마을에 대해 알 수 있는건 매우 제한적인 것 같다. 그저 시장이 있고, 시장에 문닫은 상점이 많고, 그 중에서도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몇 상점이 있고, 어느 고기집에는 사람이 많고 어디는 없고,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는 가게도 있고, 모텔과 민박이 정말 많고, 좁은 골목길이 많아 밤이 되면 무섭고. 아주 표면적인 부분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학교에서 도시설계를 배울 때는 설계 사이트에 대해 이정도의 관찰 결과만 가지고 설계를 진행했던 것 같다. 지역조사에 대해 중요도는 알고 있었으나, 길가에 나와 계시는 어르신들, 부동산 주인, 오래된 마트 사장님 정도 인터뷰를 해 조금이라도 깊게 지역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으나, 이건 새발의 피라고 생각된다.

 

도시재생은 그 지역에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라는 사무실을 두고 도시재생을 추진한다. 일상적으로 그 지역에 머물면서, 점심식자, 야근 때는 저녁식사, 때로는 회식도하고. 주민들을 최소 1주일에 한번은 만나고 (그럼에도 자주 찾아오시는 주민들은 항상 계신다) 그러면서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4년이고 지역과 함꼐하면서 도시재생을 추진한다.

 

고한읍에 와서 반나절 지내면서 느낀 것은. 지역에 대해 알고싶지만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었다. 도시재생이 아무리 비판을 받지만, 지역의 일상적인 모습을 일상으로 느끼면서 사업을 진행한다라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발전인 것 같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운 것은, 계획을 수립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엔지니어링 즉, 용역사라는 것이다. 만약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경우에 한해서. 그래서 도시재생현징지원센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하게 들었다.

 

지역에 상주하지 않는 용역사는 지역을 한번 훑어보는 정도로 지역에 대해 이해할 확률이 높다.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일상적 지역만남의 중요성을 한번 돌아보게 되는 하루였다. 그저 일상으로 느끼지 말고 일상적 만남에서 얻어지는 정보를 기록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안. 무든 현장지원센터가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데 기여하려면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둘째날 눈이 펑펑 내렸다. 조식을 챙겨먹고 공예프로그램을 즐긴 후 동네 산책을 다녀와 낮잠을 자고나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신이나서 옷을 다 챙겨입고 마을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마을 외곽에 있는 산책길에 올라가 전경도 즐기고, 빙판에 올라가 미끄러움도 즐겼다.골목길과 시장(벌써 4번째 둘러보는 시장인데도 새롭다)도 다녔다. 석탄빵, 감자빵, 꽃빵도 먹었다. 눈이 그칠 때 쯤 호텔로 돌아와 방에 불을 다 끄고 영화도 한편 봤다. 술도 진창 마시고 밤 늦도록 수다도 떨었다.

 

마을호텔의 포지션은 호텔과 고향집 사이 어디인 것 같다. 호캉스에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서비스와 대접받는다는 느낌. 고향집에 기대하는 것은 특별할 것 없이 편안히 하루를 잘 보내는 느낌. 이 두 느낌을 조금씩 가지면서도 마을호텔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어차피 사람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쉼과 같이 큰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새롭고 특별하다. 새로운 가게와 골목길, 산책로. 예상치 못한 상황과의 조우. 뭘 해도 새롭고 기대감이 넘치는 일상을 보낼 수 있다. 호캉스의 특별함과 고향집의 평범함 둘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운영의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호텔과 고향집 사이의 포지션이 단점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닐 수 있다. 시설과 서비스는 호텔만큼 좋지 않고, 처음 딱 동네를 마주했을 때 어딜가야될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어쨌든 여행지니까 바가지 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앞선다. 특별함과 익숙함 둘을 모두 놓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대가 컸던 걸까. 생각보다 아쉬움이 남는 경험이었다)

 

마을, 도시재생, 공동체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을호텔18번가는 그냥 게스트하우스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재생 고민하는 사람에겐 특별한 곳일지 몰라도, 그냥 일반 관광객에게는 10만원짜리 숙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설과 서비스의 전문성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을호텔이라는 이름에서 일반 사람들은 '마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할 것이다. 이 기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좀 더 필요하다. 좋은 뜻에서, 좋은 도시재생 사례로써 출발했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신경을 쓸 지점들이 보였다. 어찌보면 애매한 포지션을 잘 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호텔에서의 2박 3일은 나의 여행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졌다. 바쁘게 여기저기 뭔가를 보러다니는건 좋아하지 않는다.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고, 필요한 것 있을 때 구하러가고, 아무 계획 없이, 걱정없이, 초조함 없이, 해야할 일 없이 쉬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사는 동네여서 필요한 건 다 구할 수 있었고, 식사도 문제 없었고, 산책도 문제 없었다.

마을호텔18번가에서의 짧은 여행이 끝났다. 카페에 앉아, 기차를 타고오며, 다시 연구실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본다. 마을호텔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뭘까?

 

마을호텔이 나에게 준 메시지는 두개정도가 있다. 첫째는 나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고 두번째는 도시재생과 관련된 메시지다.

 

나의 여자친구는 매우 바쁘게 산다. 물론 나도 바쁘게 산다. 그러다보니 겨우 만나도 그냥 쉬거나 하루정도의 삶을 서로 이야기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가 아니라 좀 더 긴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힘든 시간 속에서도 어쨌든 잘 살아왔고, 지금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며 더 행복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에 대해 많이많이 얘기했다.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여 잘 했던 순간들을 드러내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과 초조함이 넘쳤던 나의 마음이 가능성과 행복으로 재설계되는 시간이었다.

 

도시재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완결된 사업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지금 주민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하고, 영향요인과 참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반대로 참여가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미쳐야하는건 아닐까? 도시재생 사업에의 참여가 목표가 아니라 주민들의 심리적 요인의 변화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건 아닐까. 도시재생사업은 마을의변화(이렇게 단어를 쓰면 마을의 물리적 변화를 상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주민들 집단적인 심리적 변화를 말하고 싶다)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업을 완성(예산을 시간 안에 훌륭히 다 쓰는것)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어떤 심리적 상태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행복은 과거에 대한 만족감과 현재의 친구관계,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온다. 많은 행복연구에 따르면 개인적인 영역으로부터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회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도시재생이 만드는 물리적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애착심(동네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만족감이지 않을까), 자기효능감, 사회적자본, 공동체의식(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변화시키기 위함이고, 물론 과정에서도 이를 목표로 해야한다. 거기에 가장 크게 변화시켜야하는건 사회적 관계일지 모른다. 의견을 잘 수렴하기 의해 주민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있지만, 사회적 관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도 병행되어야 한다. 도시재생 우수사례라고 하면 골목길을 아무리 예쁘게 디자인해도 결국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족감, 삶의 변화에 집중한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상기시키지 않는다면 사업의 집행에만 매몰될 수 있다.

 

마을호텔이 나에게 준 마음의 변화처럼, 마을호텔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마음에 변화를 주었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골목정원 축제를 하면서 동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마을호텔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할만한 일이 있고, 이웃과 함께하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 마을호텔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을호텔이 만들어낸 과거에 대한 인식과 현재,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우수사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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